마우스 포인터가 갈 곳을 잃고 이쪽저쪽을 헤맨다. 무의미하게 새로고침을 해봐도 수북하게 쌓인 광고 메일 위로 떠오른 검은 볼드체는 변하지 않았다. 차마 클릭할 수가 없어 바라만 보다가 다시 새로고침을 눌렀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지난 겨울 내게 불어닥쳤던 찬바람이 전파가 되어 이제야 한기를 몰고 당도한 것 같았다.

 그 무렵엔 이상할 정도로 추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새해부터 사고가 있었다. 공연을 준비하던 같은 팀 멤버가 다리를 다쳐서 출전이 취소됐던 게 시작이었다. 대타를 찾다가 포기할 때쯤 직장 동료가 보증을 잘못 섰다가 큰일이 나게 생겼다며 급하게 돈을 꾸어갔다. 그리고 돈을 빌려간 지 일주일만에 자취를 감췄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거지만 그런 식으로 돈을 뜯긴 사람은 나 말고도 여럿이었다. 때문에 사내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건 덤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고를 들었다. 고향에서 가깝게 지내던 형의 아버지가 돌연사로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대미를 장식한 건 캐나다에서 날아온 메일 한 통이었다.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도착한 영어로 작성된 이메일 한 통.

 그건 누군가 다리를 다치거나 죽기 전부터 시작됐던 일이었다. 일 년 가까이 부지런히 영어 점수를 만들고 월급의 절반을 저축해 학비를 마련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성적 증명서를 떼던 날 곧바로 입학 신청서를 넣었다. 토론토에 있는 유명 칼리지였고, 무용과 댄스를 함께 배울 수 있는 학과였다. 1년 중 세 번의 학기가 있고 매학기가 시작되는 1월과 5월, 9월에 입학이 가능했지만 내가 지원한 댄스학과는 9월에만 신입생을 받았다. 입학 오디션은 일 년 중 봄과 가을 단 두 차례만 진행되었다. 홈페이지에만 가도 버젓이 나와 있는 안내사항을, 나는 몇 번이나 반복해 읽고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서류나 돈은 한국에서 캐나다로 얼마든지 보낼 수 있지만, 인터뷰와 오디션은 그렇지가 않다는 걸.

 칼리지 입학사정관이 보낸 메일의 내용은 간결하고도 분명했다.

 - 축하합니다. 1차 서류심사에 통과하셨습니다. 4월부터 오디션이 진행될 예정이니 꼭 참석바랍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좋은 일인데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내게는 캐나다까지 다녀올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었다. 비행기표값만 해도 적은 돈이 아니었고 운좋게 오디션에 합격한다 해도 인터뷰를 진행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야 하는데 그동안의 체류비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학비도 겨우 마련한데다 직장 동료에게 돈을 떼먹힌 참이었다. 또 학원에는 뭐라 말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며칠 휴가를 내는 걸로는 시간이 부족할테고 완전히 일을 그만두자니 큰 도박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오디션을 포기했다. 포기하고선 그냥 잊자고 생각했다. 잊으려 노력했다. 잊고 싶은데 방법을 몰랐다. 만약 그때 지훈이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내가 지훈과 만나는 일에 몰두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까지 방법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다 잊었다 믿었다. 깨끗하게. 완전히. 며칠 전, 오랜만에 방치해두었던 메일함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그때도 나는 지금과 같은 기분으로 검은 볼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칼리지에서 날아온 메일은 나를 또 한 번 혼돈 속에 빠뜨렸다. 그새 영어가 줄었는지 글자들이 제대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 접수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오디션과 인터뷰을 진행해야 입학이 가능하니 서둘러 신청해주세요.

 메일이 도착한 건 무려 한 달 전이었다. 헛웃음이 났다. 너무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예의상 답메일을 보냈다. 캐나다까지 가서 오디션을 진행할 체류비가 없어서 입학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답메일에 대한 답메일은 정확히 아홉 시간 후에 도착했다.

 - 입학처와 상의한 끝에 사정이 그렇다면 특별히 인터뷰와 오디션 과정을 영상으로 심사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습니다. 심사 가능한 동영상을 최대한 빨리 첨부해 보내주세요.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어쩌자는 건지. 좀 더 일찍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포기하진 않았을 텐데. 원망스러웠다. 좀 더 야무지지 못했던 내 자신과 너무 늦게 길을 열어준 그들이. 고민하다 결국 하루만에 안무를 짜고 수업을 마친 뒤 오디션 영상을 찍었다. 전송 버튼을 누르며 생각했다. 이렇게 허접한 영상을 보고 날 뽑아줄 리 없다고. 그럼에도 손가락은 시시때때로 메일함을 클릭했다.

 Kang Daniel. 메일 제목에 적힌 내 이름이 낯설게 느껴져 한참을 바라보았다. 결과가 어떻든 아마도 칼리지에서 메일을 받는 건 이게 마지막이 될 터였다. 천천히 포인터를 옮겨 마우스 왼쪽 버튼을 눌렀다. Congratulations. 첫단어를 보자마자 알았다. 합격이었다.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때와 같았다. 좋은 일인데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머릿속엔 온통 지훈의 얼굴만이 가득했다.





 한 차례 비가 쏟아진 거리는 습하다 못해 끈적했다. 걸을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였다. 잡고 있던 손도 놓게 만드는 그런 날씨.

 "밥 말고 시원한 거 먹고 갈까?"

 입을 여는 것조차 귀찮고 힘든지 지훈은 고개만 끄덕였다. 방금 전까지 침대에서 엉겨 있다 나온 참이었다. 말할 힘 같은 게 남아 있을 리 없었다. 들어가자. 빙수전문점 앞에서 손을 잡아 끌었다. 단 걸 좋아하는 지훈은 금방 얼굴이 밝아졌다. 좋아하는 걸 고르라고 말하고선 지갑을 꺼내는데 한숨이 났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먹을 걸로 달래놓고 이제야 말을 꺼내려는 내 태도가 너무 한심해서 화가 났다.

 그런 내 속도 모르고 스푼을 물고서 빙수가 나오길 기다리는 지훈은 너무나 귀여웠다. 커다란 빙수를 앞에 두고 좋아하는 모습도. 팥이 싫어서 슬쩍슬쩍 골라내고 얼음이랑 아이스크림만 스푼 끝으로 파먹는 모습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딱딱한 얼음만 긁어내다가 겨우 입을 뗐다.

 "지훈아."
 "네?"
 "형이 어쩌면 토론토에 가게 될지도 모르는데."
 "토론토가 어디에요?"
 "캐나다."

 우와. 시선을 빙수에 둔 채로 지훈은 그 나이 또래답게 시원시원한 감탄사를 뱉었다. 토론토가 어디 있는 줄도 모르면서 지방으로 여행이나 출장을 다녀오는 것처럼 대수롭잖게 여기는 듯했다.

 "언제 가는데요?"
 "이번 달 안에."
 "언제 오는데요?"
 "그건 나도 몰라."

 그제서야 지훈은 눈을 들어 내 얼굴을 보았다. 입에 든 걸 미처 삼키지 못해 올려다보는 볼이 볼록했다. 나는 더듬더듬 그간 내게 생겼던 일들을 설명했다. 이야기의 시작을 위해 우리가 만나기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얘기를 듣던 중간에 지훈은 스푼을 내려놓았다

 "니가 가지 말라면 안 갈게."

 나는 시선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얘기하는 동안 얼음이 녹아 생긴 팥물이 빙수 그릇 둘레에 띠를 만들고 있었다. 빙수가 더 녹아 완전히 물이 될 때까지도 지훈은 말이 없었다.

 "축하해요."

 지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상상을 완전히 빗겨가는 것이었다. 얼떨떨한 기분에 고개를 들었다.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첫 축하인사였다.

 "그것도 시험 봐서 붙은 거잖아요. 맞죠?"
 "....응."
 "이제 대학생 친구들 안 부러워해도 되겠다. 잘됐네요 진짜."

 고마워 해야 하는데 양심 없게도 섭섭하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혹시 몰라서 등록급 납부도 안 하고 물어본 건데. 진짜로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 생각이었는데. 너는 예쁠 땐 한없이 애 같으면서, 왜 애 같아야 할 때는 필요 이상으로 어른스러운 걸까.

 "넌 내가 멀리 간다는데 서운하지도 않아?"
 "형한테 좋은 일이잖아요. 서운해하면 안 되죠."
 "그래도 가면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데 안 붙잡을 거야?"
 "괜찮아요. 기다릴 수 있어요."

 기껏 씩씩하게 대답해놓고 말과 다르게 지훈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잠시나마 느꼈던 섭섭함은 물처럼 녹아 없어졌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기다리겠다고 말해주는 게. 지훈은 다시 스푼을 들고서 물이 된 빙수를 휘적거리며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만날 땐 나도 어른이겠네요."
 "그러네."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만나요. 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기다리겠다는 지훈에게 나는 어떤 약속도 해줄 수가 없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서로 떨어져 있는 걸 못 견뎌하고 서운하게 여기는 사람은 지훈이 아니라 바로 나란 걸. 가지 말까. 순간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형."
 "응?"
 "너무 걱정하지 마요. 시간은 금방 가니까."

 열아홉의 지훈은 너무나 어른스럽고 너무나 현명해서 항상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그래. 겨우 힘을 내어 대답하고 스푼을 들었다. 물이 된 빙수는 밍밍해서 맛이 없었다. 그래도 먹어야 했다. 지훈에게 모든 짐을 넘기지 않으려면 그래야 했다.







오랜만이에요. 쉬는 동안 무사히 마감과 이사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약속드린대로 마지막 완결편 이어서 올리도록 할게요.




Dione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