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유성페인트 냄새가 예민해진 신경을 자극한다. 머리가 아팠다. 얼마 전 몸살을 앓았을 때 느꼈던 두통과 비슷했다. 그때는 맞아서 아픈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바늘로 찔러대는 것에 가까웠다. 왜 이런데서 보자고 했을까. 갓 리모델링을 마친 건물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다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페인트가 엉망으로 묻은 유리문 너머 소름끼치는 미소를 짓고 있는 한 실장의 얼굴이 보였다.

 "어떠냐? 까리하지?"

 아무 것도 없는 휑한 벽에 대고 한 실장은 기분좋게 휘파람을 불었다. 페인트 냄새가 가장 심하게 진동하는 자리였다. 히죽대는 얼굴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이곳이 곧 그가 독립해 나올 사무실이란 걸. 그러자 그가 왜 그리 대단치도 않은 내게 그토록 집착했는지도 비로소 납득이 갔다. 새로 사업장을 꾸리려면 일을 뛸 선수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장이 관리하는 애들을 함부로 빼갔다간 사장의 노여움을 사게 될지도 몰랐다. 불필요한 위험부담을 싫어하는 한 실장의 성격상 일이 그렇게 되는 건 원치 않을 게 당연했다. 그러려면 어디에도 묶여 있지 않은, 그리고 이 바닥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그런 애들을 찾아야만 했다. 그 모든 조건에 들어맞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다신 안 볼 것처럼 굴더니. 사랑의 힘이란 게 참 대단해. 그 애송이가 뭐라디?"
 "아실 거 없잖아요."
 "허허, 애인한테 뒤통수 맞은 걸 여기서 화풀이 하면 곤란하지."
 "뒤통수 때린 건 실장님이죠."
 "애새끼가 오냐오냐 하니까 아주. 살고 싶으면 말 이쁘게 해라. 안 그럼 빡 돌아서 홧김에 영상 풀어버릴지도 모르니까."

 협박은 제대로 먹혔다. 지금 상황에선 한 실장을 자극해봐야 좋을 게 없었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발끝만 노려보았다.

 "다음 달부터다. 이쪽으로 출근해서 내 밑에서 6개월만 일해. 스무 살 될 때까지만. 계약서 같은 건 안 쓸 거고 너한테 떨어지는 수입도 없어. 근무시간도 내가 정하는 대로 해. 나오랄 때 나오고 들어갈 때 들어가면 돼. 말 잘 듣고 시키는 대로 잘하면 6개월 뒤에 영상 넘겨준다. 성인이 되고 난 다음에 그딴 거 풀어봐야 망신 주는 거 말고는 달리 쓸 데도 없으니까. 어쨌든 그때까진 얌전하게 굴어. 그 새끼 인생 조지고 싶지 않으면."

 화가 나서 필요 이상으로 크게 떠들어 목이 아팠는지, 한 실장은 그릉거리며 짐승처럼 목을 긁곤 남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영상 보니까 너 곧잘 하던데. 돈도 안 되는 대리기사 같은 거 말고 그냥 선수로 뛰어보는 건 어때?"

 뒷목이 뻗뻗하게 굳었다. 그냥 선수로 뛰라는 건 대놓고 몸을 팔란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더럽게 나올 거란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나는 마른침을 모아 삼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실장님 휴대폰에 있는 동영상, 그거 지워주세요."
 "얘가 돌아도 단단히 돌았네. 뭐? 조건? 지금 니가 그런 말 할 처지야?"
 "그 정도는 들어줄 수 있잖아요. 어차피 원본은 따로 있는 거 다 알아요. 내 알몸이 나온 영상을 누가 휴대폰에 넣어서 들고 다닌다는 게 너무 끔찍하고 싫어서 그래요. 그리고 열쇠도 주세요."
 "열쇠?"
 "다니엘 형 집에 SD카드 수거하러 다시 갔을 때 문 따고 들어갔을 거 아녜요. 몰래 복사해둔 열쇠 있잖아요. 그것도 돌려주세요."
 "그거야 도어락을 새로 달면 그만인데 내가 뭐하러?"
 "그럼 영상만이라도 지워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한 실장은 재밌다는 듯이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들어올 때처럼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셔츠의 윗단추를 풀었다.

 "너 하는 거 봐서."

 절대 속마음을 보여주지 말자 다짐했는데. 순간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내가 느낄 정도였으니 한 실장도 알았을 것이다. 담담한 척 하더니 결국엔 겁을 집어먹었구나. 그저 애새끼구나. 떠오른 표정에서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읽혔다.

 "왜? 못하겠어?"
 "지금.... 여기서요?"
 "왜? 차 안에서도 잘만 했잖아."

 그럼 일 시작해봐. 즐겁다는 듯이 한 실장은 벨트를 풀고 바지 지퍼를 내렸다. 나는 천천히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젯밤, 술집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애원하던 형의 모습은 지금의 나와 같았다. 말기 암 환자를 보는 기분이었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전해졌다. 할 말이 있다고 불러냈을 때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아무 것도 모르고 좋아서 팔짱을 꼈다가 형이 스르르 팔을 빼내는 걸 보고서야 뒤늦게 알았다. 그 '할 말'이라는 게 듣기 좋은 얘기는 아닐 거란 걸. 할 말이 있다더니 형은 집 주변만 빙글빙글 돌면서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형 담배도 피워요? 묻는 말에 형은 크게 표정도 바꾸지 않고 바람 빠진 목소리로 응, 하고 대답했다. 끊었었는데 최근 들어 다시 피우게 되었다고. 예삿일이 아니구나. 절망적인 예감에 더는 뭘 묻기조차 겁이 났다.

 "형, 저 술 한 잔 사주세요."

 절반밖에 안 태운 꽁초를 떨어뜨리며 형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어린애가 무슨 술이냐고, 화를 내며 나무랄 줄 알았는데 형은 그것조차 하지 않았다. 해야 할 말이란 게 너무 중요해서 다른 사사로운 잘못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진 것 같았다. 두 군데에서 신분증이 없다고 빠꾸를 맞은 뒤, 우리는 세 번째로 찾은 허름한 술집에 들어갔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있었음직한 아주 낡고 오래된 가게였다. 가게 주인은 무성의하게 마른 안주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주잔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신분증 검사는커녕 내 얼굴을 쳐다보지조차 않았다. 너무 장사가 안 돼서 교복을 입고 들어갔대도 눈 감고 못 본 척 했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작은 소주잔에 술을 따라 가볍게 부딪친 뒤, 형은 한 번에 잔에 든 술을 삼켰다. 나는 잠시 숨을 참았다가 들이쉬며 입 안에 든 술을 조금씩 넘겼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렇게 쓴 걸 왜 먹는 걸까. 마시다 보면 좋아지나. 겨우 비운 잔에 다시 술을 채우려 하자, 형은 긴 팔을 뻗어 내게서 소주병을 빼앗아갔다. 그만큼이면 됐다. 말을 끝내기 무섭게 형은 연거푸 술을 몇 잔이나 따라 삼키더니, 맥락도 없이 더러운 술집 바닥에 대뜸 무릎을 꿇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형을 기다리던 날의 기억이 누런 벽지와 더러운 메뉴판 위로 서서히 오버랩되었다. 헤어지자는 거구나. 그것 말곤 이 괴이한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무릎을 꿇은 채로 형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헤어지자는 말 이상으로 충격적이고 절망적인 것이었다.

 "영상이 퍼지면 더는 만나기 힘들어질 거야. 나 때문에 너까지 조사받게 될 수도 있어."

 경찰이 찾아가도 너무 놀라지 말라며, 형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조사를 받는다는 말까지 꺼낸 걸로 보아 자수할 생각인 듯했다. 나는 소주병을 끌어 당겨 형이 그랬듯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형은 그런 나를 말리지 않았다. 풀 죽은 강아지처럼 무릎 위에 손을 포갠 채 고개만 떨구고 있을 따름이었다. 잔을 꺾을 때마다 감각은 몽롱해지고 반대로 정신은 또렷해졌다. 마치 강력한 진정 주사를 맞은 것 같았다.

 "미안해. 믿음직한 보호자가 되어주고 싶었는데. 매번 실망만 시켜서."

 나는 대꾸 없이 남은 소주를 전부 따랐다. 마지막 잔이었다. 세상이 빙글 돌았다. 나는 비틀거리며 동상처럼 미동도 않고 있는 형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말을 꺼내려 입을 열자 독한 술냄새가 올라왔다.

 "우리 처음 만났던 날 기억해요? 솔직히 말하면 그땐 좀 무서웠어요. 옷을 벗고 한 적은 처음이었거든요. 아프면 어떡하지. 이상한 요구를 하면 어떡하지. 별 걱정이 다 되더라고요. 그래도 하고 싶었어요. 잘해줄 것 같았어요, 형이."

 몰랐겠지만 형은 늘 내 보호자였다고. 형이 있어서 감당할 수 있었다고. 내게 닥친 모든 불운도. 그보다 큰 파고(波高)로 나를 덮쳐온 사랑이란 감정도. 형이었으니까 가능했던 거라고. 간직했던 마음을 나는 그런 식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저 사실 거짓말했어요. 옷 사려고 그 일 했던 거 아니에요.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었어요. 처음으로 꿈을 심어준 고마운 사람이었거든요. 내 꿈은 못 지켜도 그 사람은 지켜주고 싶었는데...."

 고개를 든 형의 두 눈이 투명한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무슨 말을 해도 믿을 것 같은 눈이었다. 말하는 대로 스며들 것 같은 눈이었다. 그래서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형은 내가 꼭 지켜줄게요. 내가 반드시 지킬 거예요."





 읍. 구역질이 올라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속은 여전히 울렁거렸다. 싫은 사람의 체취는 숙취보다 지독했다. 신체 기관이 일제히 봉기해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느낌이었다. 아직 창을 달지 않아 문틀만 있는 창가에 몸을 기대고 식은 밤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한 실장의 검은 세단이 도로를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또 한 번 구역질이 올라왔다.

 옷매무새를 정리하다 단추 하나가 뜯겨진 걸 깨달았다. 조명이 없어 어디로 튕겨나갔는지 찾으려 해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을 더듬거리다 그냥 포기하고 창틀 모서리에 붙은 카메라를 떼어내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큰길 쪽으로 걸으며 카메라에서 분리한 SD카드를 OTG 리더기에 넣고 영상을 확인했다. 녹화 상태는 양호했다. 확실히 해두기 위해 빈 건물에 들어가 층계참에서 녹음된 소리를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캡처본을 저장했다. 그 다음은 심호흡을 할 차례였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 실장은 평소보다 한 톤 올라간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기분이 좋을 때만 나오는 목소리였다.

 "저예요. 지금 경찰서 왔어요. 성폭행 당했다고 신고하려고요."

 수화기 너머가 고요했다. 아무 말도 없는 걸 보아 당황한 게 분명했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 나는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걱정마세요. 누구한테 당했는지는 말 안 할 거니까. 어두워서 잘 안 보였다고 하려고요. 아, 전과는 없으시죠? 현장에 모발이랑 체액 같은 게 남아 있을 텐데 걱정돼서요."
 - 너 이 새끼 무슨 개수작이야?
 "아까 그곳에서 있었던 일, 다 녹화해뒀어요. 캡처본 보낼 테니까 확인해보세요."

 한 실장이 뭐라 고함치는 걸 못 들은 척하고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방금 전 캡처한 사진들을 차례로 전송했다. 전송 버튼을 누르는 손끝이 떨렸다.

 술집에서 형이 꺼내 보여준 초소형 카메라는 조립하기 전의 완구처럼 잘게 조각이 난 상태였다. 형이 얼마나 마음앓이를 했을지 그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받은 만큼 되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였다. 나는 형에게 한 실장이 설치한 것과 같은 초소형 카메라를 구해다 달라 부탁했다. 아마 내가 용의 비늘이나 유니콘의 꼬리털을 부탁했어도 형은 알겠다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구해왔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형의 눈빛은 절박했다. 내게 용서를 구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기세였다. 그리고 정말로 형은 용산 일대에서 내가 부탁한 물건을 찾아냈다. 한 실장의 카메라와 정확히 같은 모델이었다.

 미리 약속장소에 도착해 카메라를 설치할 때까지만 해도 한 실장이 불법적으로 동영상을 찍고 그걸 빌미로 협박을 했다는 걸 본인 입으로 말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그 정도면 협박을 하든 신고를 하든 힘 있는 증거 자료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결국 한 실장은 자기 손으로 무덤을 판 셈이었다. 자기가 쓴 수법에 자기가 똑같이 당한 꼴이었다. 초조하게 손톱을 뜯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수화기에서 멀찌감치 귀를 떨어뜨린 채 전화를 받았다. 이 씹새끼가. 예상대로 엄청난 욕설이 끝도 없이 쏟아졌다. 무서웠지만 최대한 무시하려 노력했다. 다짜고짜 욕을 한다는 건 저쪽에서 겁을 먹었다는 증거였다.

 "미성년자 성폭행에 성매매 사실까지 까발려지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욕하세요. 전 분명히 말했어요."
 - 뭐? 하!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너 일 그만둔다고 하고 나갈 때 니 손으로 계약서 원본 파기한 거 기억 안 나?
 "다니엘 형이 증언해줄 거예요. 내일 경찰서 가서 자수한다고 했어요. 형 휴대폰에 사무실 전화로 통화한 내역도 있고 우리가 같이 있는 모습이 모텔 카메라에 찍힌 것도 확인했고요. 다음날 내 계좌로 형이 돈도 넣어줬으니까 그 정도면 성매매 증거로 충분할 걸요."

 이번에도 한 실장은 말이 없었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 정신이 나가버린 것 같았다. 자기 마음대로 쥐락펴락했던 장난감들이 자해공갈단으로 돌변할 거란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은 듯했다. 여전히 목소리는 높았지만 심하게 말을 더듬거려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 그럼 그 새끼도 감방 가야지. 너랑 존나게 했는데. 자수한다고 경찰이 얼마나 봐줄 것 같아? 평생 빵에서 썩어야 할 수도 있어.
 "저 형 좋아해요. 형도 저 좋아하고요. 서로 좋아서 잔 거고 후회 안 해요. 미성년자라도 합의하에 관계한 건 형법상 처벌 못 해요. 지금 뭘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평생 빵에서 썩어야 하는 건 형이 아니라 실장님이에요. 청소년 성매매 알선에 남의 집 처들어가서 카메라 설치하고 몰래 찍은 동영상 유포할 거라고 협박하고 그걸 미끼로 성폭행까지 했잖아요. 제 말이 틀려요?"

 싱싱한 물고기처럼 펄떡이며 날뛰던 한 실장도 결국엔 입을 닫았다. 머리가 나쁜 사람은 아니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깨달았을 것이다. 어린애라고 얕잡아 보고 어르거나 윽박질러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것도.

 "그러니까 신세 망치고 싶지 않으면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듣고 시키는 대로 하세요. 먼저 동영상부터 지워요. 휴대폰에 저장된 우리 연락처, 그동안의 통화내역도 전부 삭제하고요. 사무실로 가서 사장 몰래 다니엘 형이 전화했던 날 통화기록이랑 녹취파일도 없애주세요. 일처리가 끝나면 책상 위에 SD카드만 올려놓고 보안 장치 해제하고 퇴근하세요. 내일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 들러서 시키는 대로 했는지 확인해볼 테니까. 만약에 하나라도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면 형이랑 같이 곧장 경찰서로 갈 거에요."
 - 애새끼가 겁대가리를 완전히 상실했네. 내가 니 말을 들을 것 같냐? 나한테도 동영상 있어. 그거 풀고 외국에 잠깐 나가 있다가 돌아오면 그만이야. 그럼 손해보는 건 너네야. 내가 아니고.
 "정신차려. 난 지금 당신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는 거야. 내가 입만 열면 당장 사무실로 경찰이 들이닥칠 텐데 그래도 좋아? 막 독립해서 나가려는 타이밍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사장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 그러니까 닥치고 내 말대로 해. 내일 아침 7시까지야. 혹시 내가 학교에 나타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난 걸로 알고 친구가 대신 경찰에 연락하기로 했어. 자료는 이미 다 첨부해서 메일로 보내놨고 지금 이 통화도 녹음되고 있으니까 그렇게 알고 허튼 짓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이 전화를 끊고 나면 우리는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거야. 다시는 나한테 연락하지 말고 형 주변에 얼쩡거리지도 말고 다른 나쁜 짓도 하지 말고 살아. 현장에서 검출된 당신 DNA 자료를 경찰이 보관하고 있을 테니까 다른 일로 잡혀 들어갔다가 오늘 일까지 밝혀지게 되면 그때는 내가 아닌 당신 자신을 탓해야 할 거야. 이번엔 제발 손 털 때를 알고 일어나는 사람이 되어보라고. 내 할 말은 끝났어. 꺼져. 그리고 다시는 내 인생에 나타나지 마."

 폭풍처럼 몰아치는 감정의 회오리에 휩쓸려 마지막 말은 말이라기보다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장시간 이어진 통화에 달아오른 휴대폰 만큼이나 가슴은 터질 듯 뜨거웠다. 긴장한 탓에 땀이 흘러 비를 맞은 것처럼 몸이 축축했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휘청거리던 걸음을 멈췄다. 도착한 곳은 경찰서가 아닌 회색 현관 앞이었다. 벨을 누르자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지훈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형은 나를 내려다보았다. 웃어야 하는데 얼굴이 굳어서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무슨 일이냐는 듯 걱정스레 바라보는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그럴싸한 거짓말을 생각해내야 하는데 머릿속이 그저 하얬다. 나는 지쳐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저... 씻고 싶어요."

 한겨울에 발가벗고 서 있는 것처럼 몸이 떨려서 똑바로 서 있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 형이 어깨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주저앉았을 것이다. 형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가만히 내 모습을 훑었다. 그리곤 단추가 뜯어진 자리에 한참 시선을 두었다.

 "물 받아줄게. 조금만 기다려."

 탄성에 가까운 한숨이 터져나왔다. 그건 또 다른 이름의 안도였다. 한 뼘 정도 열려 있는 문틈 사이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더운 수증기와 반쯤 굽은 너른 등이 꿈결처럼 일렁였다. 이 모든 게 꿈만 같았다. 꿈이었으면 했다. 깨어나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나긴 악몽이었다고. 그래도 그 끝엔 형이 곁에 있어 안심이었다고. 그래서 참 다행이었다고.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내 곁에 당신이 있었으면 한다고.







한 실장 이ㅅ....(말잇못

우리 지훈이 이제 그만 좀 행복해지길 ㅠㅠ

다음 이야기는 금요일에 올라옵니다. 다음편에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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