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잠깐 내리다 그칠 소나기인 줄 알았는데, 부슬부슬 내리던 빗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이런 날엔 늘 출석율이 저조했다. 고작 비 때문에 비싼 수강료를 버리고 수업에 안 나온다는 게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일이지만 거꾸로 해석하면 인간에게 날씨란 그만큼 중요한 건지도 모른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비에 젖은 거리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이렇게 싱숭생숭한 걸 보면.

 "까였네, 이거."

 쯧쯧 혀를 차며 성우 형은 입가에 묻은 맥주 거품을 닦아냈다. 줄줄이 수업이 펑크나는 바람에 예정에 없던 이른 퇴근에 놀아줄 사람을 찾다 성우 형에게 전화를 했다. 술 한 잔 사달라고 했더니 무슨 대낮부터 술타령이냐고 있는 대로 구박해놓곤, 형은 이런 날에 가면 딱인 분위기 좋은 곳을 안다며 바(bar)를 겸한 카페로 날 데려갔다. 낮엔 카페였다가 해가 지면 간단한 칵테일과 병맥주 몇 가지를 함께 파는 곳이었다. 조명이 어둡고 선곡 센스가 좋아 형이 말한대로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래서 먹고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내키는 대로 창가 쪽에 앉아 내리는 비를 감상하며 각자 주문한 술을 홀짝였다. 노래와 어우러진 빗소리가 좋아 별다른 대화도 필요없었다. 먼저 놀아달라고 해놓고 예의가 아닌 것은 알지만, 머릿속이 복잡해 별로 말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수강생들이 안 나와서 일찍 나온 거라니까요. 까인 게 아니고."
 "누가 일 얘기 하재? 그거 말고 딴 거 있잖아."

 누굴 속이려고. 으스대는 말투로 형은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맞는 말이었다. 눈치빠른 성우 형을 속이기엔 내가 너무 어설펐다.

 "형."
 "으흠?"
 "어린애가 좋으면 어떡해요?"
 "뭐야. 너 그런 취향이었냐?"

 뭘 생각하고 있는 거야 이 인간. 당신이 상상하는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려는데, 형은 내 말을 듣지도 않고 대뜸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어떡하긴. 경찰에 신고해야지. 진짜로 버튼을 누르려는 걸 팔을 들어 막고 휴대폰을 빼앗아 내려놓았다. 장난을 너무 진지하게 친다는 게 단점이다, 이 형은.

 "얼마나 어린데?"
 "열아홉이요."
 "에이, 열아홉이 무슨 어린애야. 그 나이면 다 컸지."
 "그래도 법적으로는 미성년자잖아요."
 "기다려. 일 년만 참으면 되잖아."
 "못 참겠으면?"

 성우 형은 말없이 휴대폰을 끌어오더니 차분히 112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더는 장난도 못치게 휴대폰을 빼앗아 가방 속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 얼굴에 있는 모든 근육을 써가며 성우 형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못 본 척하고 앞만 바라보았다.

 "내가 돌았나 봐요."
 "그런 것 같다."

 짠 것처럼 동시에 맥주잔을 기울인 후 우리는 다시 빗소리에 집중했다. 타닥타닥. 따지고 보면 충돌음이나 파열음 같은 건데 그 잔인한 걸 뭐가 좋다고 계속 듣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인간의 내면엔 잔인한 파괴 본능이 있는 게 분명하다.

 "다행이네. 내가 신고하기 전에 까여서."
 "아니에요. 그런 거."
 "그럼 까인 게 아니라 깠어? 왜? 지금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그런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나, 내가. 모른다. 남들도 아는 걸 나는 왜 몰랐을까. 빈 잔 위에 한숨만 흩어진다.

 그만 보자는 말에 그대로 뛰쳐나간 지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보단 멋스럽게 헤어지길 원했는데. 역시 어린애라고 생각했다. 그따위 생각이나 하면서 나는 추잡한 어른 흉내를 내고 있었다. 마음이 불편한 것도 내 잘못이 아닌 지훈의 탓으로 돌렸다. 그렇게 며칠을 체한 듯한 기분으로 보낸 후에야 깨닫고 말았다. 나는 아직 지훈을 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걸.

 뱉었던 말을 무를 생각은 아니었다. 나도 내가 뭔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몰랐지만 굳이 따지자면 사과를 하고 싶었다. 일방적으로 그런 말을 해서 상처를 준 것에 대해. 하지만 지훈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톡을 보내도 확인하지 않았다. 내 번호가 스팸 등록되었거나 내 아이디가 차단 당했거나 둘 다인 것 같았다. 번호를 바꿨을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날 피하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이보다 깔끔한 결말은 없었다. 헤어지길 원했으니 좋아해야 할 일인데 체한 듯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양심없게도 지훈이 자꾸 보고 싶었다.

 미련을 못 버리고 딱 한 번만 전화를 받아달라고 메세지를 보내다, 문득 지난 겨울 지훈과 처음 만났던 때의 일이 떠올랐다. 술에 취해 대리기사 서비스를 요청했던 그날의 기억이. 그렇다면 같은 방법으로 한 번 더 만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잘못된 방법인 걸 알면서도 내 손가락은 이미 통화목록을 미친 듯이 내리고 있었다. 전화번호를 저장해두지 않아 통화한 날짜와 시간대로 유추해 대리기사 콜을 찾았다. 다짜고짜 박지훈을 연결해달라고 말하자 수화기 너머 상대방은 당황한 듯 그런 사람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자꾸 거짓말하면 미성년자 데리고 사업하는 거 찌를 거라고 협박을 하자 다른 사람이 수화기를 넘겨받았다. 선생님, 하는 목소리에서 껄렁껄렁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걔는 두 달 일하고 관뒀는데 어떻게 알고 전화를 하셨을까. 서로 입단속 잘하기로 약속하고 좋게 끝냈는데. 당신 누구야? 뭔데 끼어들어? 상스러운 욕설까지 듣고 난 후에야 종료 버튼을 눌러 전화를 끊었다. 이미 두 달 전에 일을 관뒀다니. 충격이었다.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지훈이 일을 그만두어서. 그리고 서운했다. 이제야 그걸 알게 되었다는 것에. 끝까지 지훈은 비밀이 많은 아이였다.

 "남자애라서 그런 거야?"

 그런 어마어마한 말을 던져놓고서 성우 형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창 밖만 내다보았다. 속으론 뜨끔 했지만 뭔소리냐고 두 손 저어가며 부인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직 애잖아요. 혼잣말에 가깝게 중얼거리며 빈 잔을 만지작거렸다. 술이 더 필요했다.

 "내 눈에는 너도 애야."

 어쩌겠어. 좋은 걸. 형의 마지막 말은 빗소리에 가려 잘 들리지 않았다. 비가 너무 많이 오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기분이 이럴 수가 없었다.

 지훈이 보고 싶었다. 바라는 건 오직 그것뿐이었다.






 더 놀아줄 것처럼 굴 때는 언제고 그만 가봐야겠다며 성우 형은 휴대폰을 챙겨 도망쳤다. 2차 정도는 갈 줄 알았는데 저녁 연습이 있어서 안 된다는 거였다. 조금 더 졸라볼까 하다가 바쁜데도 짬을 내 만나준 걸 알아서 미안한 마음에 더 붙잡지 못하고 그냥 쿨하게 보내주었다. 덕분에 집 앞에 도착했을 땐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녁이라도 먹고 들어오는 건데. 들어가는 길에 먹을 거라도 사갈까 하다가 입맛도 없고 귀찮기도 해서 곧장 집으로 향했다. 얼른 들어가서 냉장고에 넣어둔 시원한 맥주나 두어 캔 마시고 싶었다.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땐 빗줄기가 더 굵어져 꽉 붙잡지 않으면 우산이 넘어갈 정도였다. 바람 때문에 기울어진 우산을 바로 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집 앞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교복을 입고 가방을 맨 남학생이었다. 우산도 없이 내리는 비를 흠뻑 맞으며 서 있는 모습이 몹시 수상했다. 옆집에 학생이 살았던가. 왜 안 들어가고 저기에 서 있는 거지. 고개를 갸웃하며 가까이 다가서자 빗물에 젖은 옆얼굴이 클로즈업 한 것처럼 눈동자에 빨려 들어왔다. 순간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멈춰선 나를 뒤늦게 알아챈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반짝이던 눈동자마저도 비에 젖은 듯 물기가 가득했다.

 "지훈아...."

 정신을 차리고 다가가 일단 우산부터 씌웠다. 얼마나 오래 그러고 있었는지 옷이며 머리가 이미 쫄딱 젖어 있어 우산을 씌워도 별 도움이 안 됐다. 급한 마음에 우산도 내팽개치고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지훈의 어깨에 걸쳤다. 손끝에 스친 목덜미가 얼음처럼 차가웠다. 내가 부산하게 요란을 떠는 동안 지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나를 기다리다 돌이 된 망부석처럼. 모든 감정이 거세된 채로.

 "왜 이러고 있어. 일단 들어가자."

 손을 잡아 끌었지만 지훈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차갑고 축축한 지훈의 손이 스르르 내 손 바깥으로 미끄러졌다.

 "이유를.... 알고 싶어서요."

 따끔한 무언가가 가슴에 걸린 듯한 목소리로 지훈은 보랏빛으로 변한 입술을 열어 말했다. 이유...? 무슨 뜻인지 알면서 굳이 나는 되물었다. 그런 내가 한심해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이해가 안 돼서 그래요. 이해하고 싶은데,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
 "지훈아."
 "그것만 말해주면 돌아갈게요."

 이유가 뭐예요? 젖은 속눈썹을 깜박이며 지훈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거기에 대고 넌 아직 어리다고, 널 위해 그런 거라고 말을 할 순 없었다. 내가 너를 좋아했던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처음부터 널 그런 식으로 만났던 게 실수였다고. 그런 자기기만적인 말로는 지훈을 이해시킬 수 없을 게 뻔했다.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는 대신, 나는 질척한 바닥에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묵묵히 땅바닥만 보았다. 도저히 지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훈아. 형이 잘못했다."

 푹 숙인 고개 위로 하염없이 빗방울이 떨어졌다. 빗줄기에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좁은 시야엔 지훈의 신발코만 겨우 보였다. 한쪽 신발끈이 반쯤 풀어져 있었다. 그래도 된다면 묶어주고 싶었다. 내 손으로 직접. 넘어지지 않도록. 죽을 죄를 지어놓고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이란 그 정도가 고작이었다. 성우 형의 말이 옳았다. 나는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좋아하면서. 사실은 말도 안 되게 좋아하고 있으면서.

 "형도 똑같아."

 날카로운 한 마디와 함께 셔츠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개를 들자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달려나가는 지훈의 뒷모습이 보였다. 지훈아! 뒤늦게 소리치며 쫓아갔지만 지훈은 이미 저만큼이나 멀어져 있었다. 얼마 못 가 포기하고 뛰기를 멈췄다. 극렬한 자기혐오와 환멸이 거센 폭풍우처럼 밀려와 내 몸을 휘감았다. 겨우 만났는데 또 이렇게 보내다니. 미안하다고. 사실은 널 많이 좋아하고 있다고. 해야 할 말은 못하고. 바보같이 또.

 하늘이 번쩍 하더니 천벌이 내리는 것처럼 벼락이 내리쳤다. 주인 잃은 우산은 바람에 휩쓸려 털털거리며 텅 빈 골목길을 굴러갔다. 죽고 싶다. 왜 항상 깨달음은 한 발짝씩 늦게 찾아오는 것일까. 모든 후회가 나를 치고 지나간 뒤에야 세상을 부술 듯한 굉음이 몰아쳤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 글을 썼을 때에도 비가 오고 있었는데

글을 올리는 지금도 비가 오고 있고, 심지어 글 속에서도 비가 내리고 있네요 ㅎㅎ

다음편에선 녤윙의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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