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도 냄새가 있다면 이런 냄새일까. 버석거리는 소독약 냄새가 떠다니는 지하 2층. 가장 구석진 곳에 차려진 빈소 앞에서 나는 섣불리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했다. 여기서 신을 벗고 들어가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떼를 쓰고 억지를 부려도 소용없게 될 것을 알아서.

 전화가 걸려온 건 늦은 밤이었다. 열한 시가 넘은 시간에 집전화가 울리는 건 무척 드문 일이라, 침대에 누워 선잠이 들었다가 벨소리에 잠이 깨고 말았다. 맑지 않은 정신에도 방문을 사이에 두고 통화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뭐라고요? 엄마가 한 말은 그게 전부였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그게 삼촌이 걸어온 전화라는 걸 알았다. 그토록 고대하던 전화였는데 이상하게도 엄마는 말이 별로 없었다. 전화를 끊은 뒤에도 소름끼치는 정적만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불길한 예감에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려 덮고 억지로 눈을 감았다. 혹시나 소식을 전하러 들어온 엄마가 내 표정을 읽을까봐 두려웠다. 아닐 거라 믿고 싶어도 본능은 자꾸 위험한 방향을 가리켰다.

 다음날 아침상 앞에서 엄마는 담담하게 삼촌의 소식을 전했다. 내가 충격을 받을까봐 걱정이 됐던 걸까. 거꾸로 나는 담담한 척하는 엄마가 걱정됐다. 혼자서 장례식장에 다녀오겠다는 걸 고집을 부려 함께 따라나선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편으론 삼촌의 마지막을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실컷 화를 내고 미워하고 싶었는데. 정작 눈앞에 차려진 빈소는 너무 썰렁해 도리어 분할 지경이었다. 조문객은 엄마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삼촌을 처음 만난 건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막 아역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회사도 없이 스케줄을 소화하다 일이 많아지면서 엄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알음알음으로 작지만 믿을 만한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렸던 나는 당시에 매니저를 삼촌이라 부르고 따랐다. 삼촌은 나를 친조카처럼 예뻐하며 챙겼다. 생일마다 꼬박꼬박 선물을 챙겨주고 쉬는 날엔 자청해서 놀이동산에 데려갈 만큼. 그러다 내게 사춘기가 왔을 무렵, 삼촌은 매니저 일을 그만두고 회사를 떠났다. 삼촌이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계속 방송일을 할지 이제라도 열심히 공부에 매달릴지 고민하던 시기였다. 막연히 꿈과 현실 사이에서 마음만 분주히 오가던 그 무렵, 사장이 된 삼촌에게서 연락이 왔다. 잘 지내고 있느냐고, 몰라보게 컸겠다며 삼촌은 나를 자신의 회사로 초대했다. 논현동 한복판에 위치한 회사는 생각했던 것보다 으리으리했고 눈이 닿는 곳마다 반지르르한 광택이 흘렀다. 이름은 잘 몰랐지만 소속된 연예인도 여럿이었다. 이제까진 주로 연기자 육성에 주력했지만 앞으로는 아이돌을 키워볼 생각이라고. 성공한 아이돌 그룹 하나가 얼마나 찬란하고 값비싼 미래를 가져다줄지에 대해 삼촌은 길고도 집요하게 연설하듯 말했다. 진로를 두고 고민하던 내겐 귀가 솔깃해지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연기만 할 게 아니라 가수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던 차였고 무엇보다 회사가 너무 크고 좋았다. 결심이 서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춤과 노래를 배우는 일은 언제나 고단했고 그 이상으로 즐거웠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다는 걸 깨달은 건 소속되었던 배우들이 하나 둘 회사를 떠나고 예정되어 있던 레슨이 취소되는 일을 반복해 겪으면서였다. 데뷔조에 있던 아이들이 모두 미성년자였던 탓에, 뒤늦게 사정을 전해들은 부모님들이 항의차 회사를 방문했을 땐 이미 회사가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뒤였다. 어른들 사이에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 자세하게는 알 수 없지만, 일단 급한 불을 끄자는 마음으로 부모님들끼리 돈까지 걷어 갖다준 모양이었다. 데뷔가 목전이었던 만큼 회사와 자식을 살리기 위한 필사의 방편이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결국 회사는 부도가 났다. 행방불명된 삼촌에게선 소식이 없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남겨진 사람들 사이에선 난리가 났다. 처음부터 회사 망할 거 알면서 사장 새끼가 우릴 속여 돈만 받아 먹고 튄 거라고. 어른들은 분을 참지 못하고 수백 번 혀끝으로 삼촌을 죽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꿋꿋하게 삼촌을 믿었다. 누구보다 오래 삼촌을 봐왔으니까. 좋은 사람인 걸 아니까. 솔직한 맘으론 오죽하면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었다.

 그리고 삼촌이 종적을 감춘 치 한 달쯤 되었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 들려온 건 놀랍게도 삼촌의 목소리였다. 떨리는 목소리로 삼촌은 내게 더듬더듬 변명을 늘어놓았다.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런 상황에서도 얼마나 아이들을, 그중에서도 특히 나를 생각하고 버텨왔는지. 잠시 몸을 피하고 있을 뿐, 급한 불만 꺼지면 상황을 정리해서 다시 일어서볼 생각이라며 삼촌은 옅은 희망이 밴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딱 오백만 있으면 된다고. 그 돈만 구하면 살 텐데 못 구하면 자기는 죽어야 한다고.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판단할 능력이 내겐 없었다. 다만 그 말을 하는 삼촌의 마음이 진심인 것만은 알았다. 인간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부모님께는 말하지 말아달라는 삼촌의 부탁에 알겠다고 대답한 건 그래서였다.

 한 달 안에는 돈이 필요하다는 삼촌의 부탁에 이것저것 알아보다 대리기사 일을 시작했다. 그걸로도 한 달 안에 오백을 버는 것은 무리라, 번 돈을 전부 입금하고 부족한 돈은 다음 달에 주겠다 말했다. 그래도 처음 돈을 받을 땐 고맙다고 하더니 나머지 돈을 받은 뒤엔 그런 말도 없이 그대로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결국엔 그렇게 될 것도 알았지만 어쩔 수 없는 서운함이 밀려왔다. 허무했다. 연달아 배신 당한 기분이었다. 알았다. 다 알면서도 그랬다. 이제라도 일이 잘 풀려서 기적처럼 회사가 살아난다 해도 너무 늦었다는 걸. 다른 친구들처럼 최대한 빨리 다른 회사를 찾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머리로는 다 알았지만 한 번 무너진 마음은 쉽게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러기엔 상처가 너무 깊었다.

 그래도 죽지는 말았어야지. 내가 그 돈을 어떻게 벌었는데. 얼마나 당신을 살리고 싶었는데.

 흐릿한 향냄새에 주먹을 말아쥐고 빈소 안으로 들어섰다. 영정 속 삼촌의 얼굴은 지독하게 평온해보였다. 말해주고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며 내가 당신을 얼마나 믿었는지, 당신을 살리기 위해 어떤 짓까지 했는지, 낱낱이 말해주고 죄책감을 안겨주고 싶었는데. 죽다니. 죽으라고 한 적도 없는데 멋대로 죽어버리다니. 삼촌은 또 한 번 날 배신하고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도망쳐버렸다. 더는 내가 어쩔 수도 없게.

 잘 가요. 쓸쓸한 작별인사는 그저 건조하기만 했다.






 연락이 오지 않았다.

 불행의 전조처럼 목요일 저녁이 될 때까지도 휴대폰은 잠잠하기만 했다. 우리는 주말마다 만났고 그 전에 항상 형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었다. 시작하는 말은 달랐지만 끝맺는 말은 언제나 같았다. 주말에 봐. 나는 그 말을 듣는 것이 좋았다.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은 앞날에 유일한 믿음을 주는 말이었다. 일주일 사이에 내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몰라도 그것 하나만은 선명했다. 이번 주말에도 우리가 만난다는 것. 고작 그만큼으로도 나는 설렘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다. 기다림조차 기쁨이었다. 무언가를 보장해줄 사람이 있다는 건. 정해진 때가 되면 예외없이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하지만 이번주는 달랐다. 형의 전화보다 먼저 삼촌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장례식장에 다녀오고 나서도 연락은 아직이었다. 그까짓 거 내가 먼저 연락하면 그만이란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다. 형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바쁜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삼십 분쯤 지나 톡 알람이 울렸다. 수업 중이라 전화를 못 받았다며, 여느 때처럼 다정한 말투로 형은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세 시쯤 볼까? 보통은 만나서 같이 점심을 먹었는데, 세 시면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이랑 점심 약속이 있나. 결혼식장에라도 다녀오는 걸까. 평소와 다른 패턴에 당황한 사이, 처음 보는 장소의 약도가 첨부파일로 날아왔다. 여기로 와. 나는 어리벙벙한 얼굴로 메세지와 약도를 번갈아 보았다. 그동안은 항상 형이 사는 동네 지하철역 앞에서 만났었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이상했지만 어쨌든 형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나는 그걸 예외가 아닌 변주로 여겼다. 뻔한 것을 싫어하는 내게 그 정도의 변화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오늘도 예쁘네."

 약속 장소에 딱 맞춰 도착한 형은 어쩐지 조금 슬픈 듯한 얼굴이었다. 가자. 그렇게 말하며 어깨에 팔을 두르는데 나도 모르게 몸이 딸려 갔다. 자꾸만 생경함과 익숙함을 오가는 온도 차에 나는 그저 어지럽기만 했다.

 형은 만난 곳에서 백 미터도 안 되는 곳에 있는 작은 카페로 나를 데려갔다. Angst Blute. 읽기도 어려운 이름의 카페였다. 카페 안엔 자리가 딱 하나 남아 있었다. 하나 남은 자리는 남자 둘이 앉기엔 조금 좁았지만 커튼을 치면 외부와 분리되는 구조라 아늑한 맛이 있었다. 보기만 해도 간질간질한 가벼운 소재의 커튼을 잡아당기자 금방 속닥한 분위기가 되었다. 천장 귀퉁이에 붙은 보안카메라를 피해 테이블 밑으로 형과 손을 맞잡고 메뉴판을 펼쳤다. 음료는 딱 두 종류였다.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인 앙스트와 블뤼테. 두 가지 모두 연유와 우유, 그리고 사장님이 직접 만드시는 홍차시럽이 들어가지만 앙스트는 에스프레소 샷이 들어간 라떼고 블뤼테는 논카페인(noncaffeine) 음료라는 것이 차이였다. 별로 선택할 여지도 없이 형은 앙스트를, 나는 블뤼테를 주문했다. 설명을 듣고선 굉장한 어른의 맛일 거라 생각했는데, 나온 음료를 마셔보니 의외로 달달한 게 입에 맞았다. 맛있다. 나는 음료를 홀짝이며 가게 내부의 인테리어를 살폈다. 은근한 홍차향이 기분 좋을 정도로만 씁쓸하니 입 안에 맴돌았다.

 "이런 덴 어떻게 알고 여기서 보자고 했어요?"
 "친구 인스타에서 보고 좋다고 생각했거든. 나도 와본 건 처음이야."
 "아... 가게 이름이 독특해서 무슨 뜻인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검색해볼까? 나는 휴대폰을 꺼내 검색창에 가게 이름을 적어 넣었다. 돋보기 모양의 버튼을 누르자 검색 결과가 주르륵 떴다. 앙스트 블뤼테. 불안 속에 피는 꽃. 꽃을 잘 피우지 않는 전나무가 환경이 열악해져 생명이 위태로워지면 죽음을 앞두고 유난히 화려한 생애 마지막 꽃을 피워올리는 현상에서 비롯된 말. 어원은 생물학적인데 해석은 철학적이네. 가게 이름마저도 어른스러운 느낌이다. 그렇다고 싫은 건 아닌데 이상하게 거리감이 느껴져 왠지 좀 기가 죽었다.

 "이거 다 마시면 우리 뭐해요?"

 물어놓고 나는 슬쩍 형의 눈치를 보았다. 못 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어디가 아픈 건지 이상할 정도로 다운된 모습에 걱정이 되었다. 내가 물으면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 하는데 분명히 듣고도 묵묵부답인 것도 신경이 쓰였다. 낯선 모습에 점점 마음이 불안해졌다. 헛소리여도 좋으니 아무 말이나 해줬으면 했다. 기묘한 침묵 끝에 형은 커피 대신 물잔을 들더니 겨우 입을 떼었다.

 "지훈아. 형이 할 말이 있는데."

 나는 대답 대신 눈을 깜빡이며 형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넌 눈이 참 예뻐. 그건 섹스가 끝난 후 형이 자주 했던 말이었다. 그런 눈으로 날 보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안 나. 그런 느끼한 말을 형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곤 했었다. 그러니까 제발 한 번만 내 눈을 봐주었으면. 제발. 나는 형과 눈을 마주치려 애를 쓰며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본능은 이번에도 자꾸 위험한 방향을 가리켰다.

 "우리 그만 만나는 게 좋을 것 같다."

 형은 내 눈을 보지도 않고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너무 집중하고 있어서 잘못 들었을 리도 없었다. 그만, 이라는 단어에서 이미 심장은 멎어버린 것 같았다. 이유를 물어야 하나. 싫다고 해야 하나.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기는 할까. 복잡한 머릿속에 문득 엊그제 보았던 삼촌의 영정 사진이 떠올랐다. 약이 오를 정도로 평온하고 딱할 정도로 선해 보이던 그 얼굴이. 어른들은 왜 그런 걸까. 어렵사리 마음을 열면 보란듯이 버려진다. 좋아했는데. 그래서 믿었던 건데. 하나부터 열까지 나는 다 진심이었는데. 왜. 도대체 왜.

 "난...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슬픔과 분노가 공평하게 차오른 목소리가 힘없이 내려앉았다. 넓은 형의 어깨가 축 처져 있는 걸 보는 게 너무나 괴로웠다. 차라리 길게 변명이라도 해주지. 아니면 냉정하게 잘라 말하지. 내가 재미없어졌다고. 귀찮아졌다고. 지금 이러고 있는 것도 다 낭비처럼 느껴진다고. 하지만 길고 긴 침묵에서 나는 이미 형의 대답을 듣고 있었다. 할 말이 없다는 건 그것만이 진심이란 뜻이란 걸.

 커튼을 걷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여 흘러들었다. 속닥한 분위기도, 둘만의 세상도,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어울리지 않는 공간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냥 달콤한 우유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사는 내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겪어보면 그보다 훨씬 복잡한 맛이었고 그 끝은 언제나 씁쓸했다. 작은 내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었다. 어린 내가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세상은 좀처럼 기다려주는 법이 없었다. 참 불친절했다. 나는 어김없이 마음을 다쳐야 했다.

 이번에는 다를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눈이 뜨거워 입을 꼭 다물고 차오르는 모든 것들을 모아 삼켰다. 매워진 코끝엔 희미한 홍차향이 은근하게 맴돌았다.






처연미 넘치는 열아홉 지훈이의 사정은 그러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대로 새드로 끝날까봐 걱정할 분들도 계실 것 같지만

아직 남은 이야기가 많으니 끝까지 지켜봐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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