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

 손목 안쪽에 통증이 느껴져 턱을 괴려다 말고 소매를 걷었다. 푸른 멍자국이 선연해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언제 다친 거지. 꼭 뭐에 묶인 것처럼 멍이 생겼다고 생각하다 주말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아픈 줄도 몰랐었는데. 힘조절도 못하고 멍까지 만든 걸 보면 그쪽도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나 보다.

 "왜 그래요? 다쳤어요?"
 "어? 아니야."

 진영이의 커다란 눈동자가 뚫을 듯이 내 손목을 내려다본다. 황급히 소매를 내리고 아니라며 방긋 웃어보였다. 그냥 연습하다 다쳤다고 할 걸 그랬나. 아니면 알바 하다가 다친 거라고 해도 됐을 텐데. 곁눈질로 진영의 눈치를 살피며 감자튀김 하나를 집어 입 안에 넣었다. 식은 감자튀김에선 눅눅한 기름 맛이 났다.

 "근데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사람 옆에다 두고."
 "내가 그랬어?"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진영은 포장지를 바스락거리며 버거를 한 입 깨물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들고 있는 햄버거가 자기 얼굴만 하다.

 "그거 아직 해결 못했구나. 그죠?"
 "아냐, 해결했어."
 "진짜? 실장님인가 하는 그 사람 만났다고?"
 "응."

 덤덤하게 대답하곤 빨대를 물었다. 얼음이 녹아 콜라맛이 밍밍했다. 이상한 날이다. 입에 넣는 것마다 하나같이 맛이 없다.

 약속시간은 8시였다. 형이 맛있는 걸 만들어주겠다고 집으로 초대한 날이었다. 선약을 핑계로 다른 날로 약속을 미루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빨리 해치우자는 마음 또한 공존했다. 하루빨리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우울한 과거로부터. 그 과거로 인해 발목을 잡힌 나 자신으로부터.

 20분 지각이었다. 정신없이 뛰어가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카페 2층 창가에 앉아 있는 한 실장의 모습이 보였다. 한 실장은 날 보더니 웃으며 반겨주었다. 낯설었다. 그 모든 상황이. 예전 같았으면 쌍욕을 들으며 뺨을 맞았을 일인데. 뭐 마실래? 묻기에 괜찮다 말하고 맞은편에 앉았다. 한 실장 앞에 놓인 커피잔은 거의 비어 있었다.

 "너 만나러 간다니까 사장이 아주 난리더라. 진짜 완전히 그만두는 거냐고 계속 묻던데."

 나는 대답 대신 땀이 배인 주먹을 꼭 말아쥐었다. 대답할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일 그만둔 지도 한참이고 정산도 끝났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지. 사장한테 독립해서 새로 회사 차린다는 소문이 돌던데 혹시 그것 때문에 내 속을 떠보려는 건가. 삐딱한 질문에 삐딱한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사장한텐 말 안 할 테니까 나한테만 솔직하게 얘기해봐. 너 스폰 생겼지? 호구 하나 제대로 잡은 거 아냐?

 다리를 바꿔 꼬아 앉으며 한 실장은 궁금증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일을 하다 보면 따로 만나자는 얘길 꺼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누군가에겐 그런 스폰서를 물어 이 바닥을 뜨는 게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다. 마음에 든다며 회사를 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없겠느냐고, 근사한 식사와 비싼 선물을 미끼로 접근하는 사람이 내게도 몇몇 있긴 했었다. 하지만 맛있는 걸 만들어주겠다며 집으로 초대해 요리를 해준 사람은 형이 처음이었다. 호구라. 어떤 의미에선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형은 내게 뭐든 다 퍼주려 했다. 같이 있으면 그게 다 느껴졌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왜 갑자기 그만둔 건데?"
 "처음부터 한 달만 하고 그만두기로 한 거였잖아요.
 "야, 그런 말 하는 사람이 한둘인 줄 알아? 첨엔 다들 그래. 그러다 한 달이 두 달 되고 두 달이 석 달 되고 그러는 거지. 너도 그랬잖아. 보통 두 달 견디면 좀 더 하려고 하지 이렇게 그만두는 경우가 없으니까 신기해서 물어보는 거야. 진짜 뭐 없어? 혹시 너 내가 사장한테 꼬지를까봐 그러는 거냐?"

 스폰이 생겨 일을 그만두게 되면 회사엔 타격이 되므로 대개 그런 경우 끝이 좋지 않았다. 뒤통수 치면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사장의 경고는 자주 현실이 되었다. 그러니 한 실장이 자꾸만 억지를 부리며 내게 대답을 강요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가만히 안 놔뒀을 텐데, 내가 미성년자라서 어쩌지 못하니 분풀이를 하고 있는 거였다. 처음 회사로 찾아갔을 때 한 실장은 내가 미성년자인 걸 알고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어린애라 만만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그걸 불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까진 못했던 걸까. 어느 쪽이든 지금은 후회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자존심을 꺾고 내 요구에 따라 여기까지 나온 것만 봐도 그랬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정리할 일이 남아 있었다.

 "자, 계약서 원본."

 내가 계속 대꾸를 않자 한 실장은 포기하고 계약서를 꺼냈다. 도장을 찍을 때만 해도 내 발목을 잡을 생각만 했지 이걸로 자기 발목이 잡힐 생각은 못 했을 것이다. 나는 계약서가 원본이 맞는지 꼼꼼하게 확인한 뒤 반으로 갈라 찢었다. 그제야 한 실장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양손을 비비적거렸다. 기분이 좋을 때만 나오는 그의 습관이었다.

 "그동안 번 돈은 어디다 쓸 거야? 학생한텐 꽤 큰 돈이잖아?"
 "벌써 썼어요."
 "벌써? 빚이라도 있었어?"
 "네."
 "아빠 사업 빚?"
 "비슷해요."

 싱겁긴. 한 실장은 피식 코웃음을 치더니 이상한 기합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따라 일어서지 않았다.

 "손 털 때를 알고 일어나는 사람이 진짜로 멋진 거야. 넌 뭘 해도 잘될 거다, 짜식."

 어울리지 않게 덕담 비슷한 말을 남기고서 한 실장은 카페를 떠났다. 나는 찢겨진 계약서를 다시 반으로 찢고 또 찢고 가루가 되도록 잘게 찢었다. 그리곤 종잇조각을 한 데 모아 빈 커피컵에 담아 버렸다. 후련한 마음으로 돌아선 뒤에야 왈칵 서러움이 밀려 왔다. 형의 마지막 얼굴이 떠올랐다. 질투와 비난이 섞여 있던 날카로운 말투. 가지 말라며 문 앞을 막아서던 모습. 그리웠다. 내게 상처를 줬던 말과 행동까지도. 사실 일을 그만둔 지 꽤 되었다고. 형을 만나고 나서부턴 도저히 그 일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고. 일을 그만둔 기념으로 형에게 밥을 사주고 싶었던 거라고. 하지 못했던 말들이 눈물로 터져나올 듯했다. 그래서 왱왱 울려대던 휴대폰을 보고도 걸려온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 겨우 눈물을 참아냈을 땐 부재중 전화 표시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위이이잉- 공상을 깨는 요란한 진동 소리에 깜짝 놀라 휴대폰을 보았다. 나한테 온 게 아니네. 가슴을 쓸어내리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에이, 뭐야 스팸이잖아. 진영이는 햄버거를 오물거리며 메세지를 확인하더니 테이블 위에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실장이랑 얘기 잘 된 거 맞죠? 깨끗하게 해결됐다더니 표정이 그냥 그러네."
 "피곤해서 그런가봐. 어제도 두 시까지 연습했거든."
 "연습을? 어디서?"
 "관린이네. 그쪽 회사는 주말에 직원들이 아무도 출근을 안 한대. 그래서 안 들키게 몰래 가서 연습실 좀 빌려 썼지."
 "그럼 주말에는 쭉 거기 가 있었던 거야? 언제부터 그랬는데?"
 "좀 됐어."
 "독하다. 평일엔 매일 아르바이트에, 주말엔 연습실에.... 노는 날 전화해도 일 있다고만 해서 그런가 보다 했지 그러고 지냈는 줄은 상상도 못했네."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주말 내내 연습하고 그랬던 건 아냐. 정말 가끔 몸 풀러 갔던 거지.

 애초에 일을 시작하면서 평일에만 일하기로 못박아둔 건, 주말에는 무조건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상황이 급변했어도 연습을 완전히 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결심은 형을 만나면서 흔들리고 말았다. 일주일에 딱 이틀 연습하는 건데, 주말에 데이트까지 하려니 시간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고민 끝에 내가 찾은 방법은 형과 헤어진 뒤 연습실로 직행해 새벽까지 연습을 하는 거였다. 포기할 수 없었다. 연습 시간도, 형과의 시간도. 그러려면 잠을 줄여가며 생활하는 수밖엔 없었다.

 "형은 비밀이 참 많아. 원래 성격이 그런 건 알지만 가끔씩 서운하다니까."

 입을 불퉁하게 내민 얼굴이 귀여워, 나는 진영의 볼을 툭 건드리며 웃었다. 보컬학원에서 처음 만났을 땐 인상이 썩 밝지 않아서 절대로 못 친해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친해지고 나니 안 그렇게 생겨서는 말도 잘 들어주고 조잘조잘 얘기도 잘 하고. 의외로 애교 많고 상냥한 성격이라 알게 모르게 많이 의지하게 됐다. 모든 사정을 다 얘기했던 건 아니지만 힘든 일이 있고 나서는 유일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사람이기도 했다. 문제는 진영이 보기보다 눈치가 꽤 빠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빚을 갚기 위해 알바를 시작했단 얘길 전하면서도 그 일이 어떤 일인지에 대해선 전혀 말해줄 수가 없었다. 말해줄 수 없는 내 심정까지도 진영은 눈치로 이미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알바를 그만두었다는 말을 했을 때도, 진영은 다른 걸 묻기보다 그럼 남는 시간에 자기네 회사 연습실을 같이 쓰면 어떻겠냐고 먼저 말을 꺼내주었다. 완전히 감을 잃지 않으려면 연습은 계속하는 것이 좋을 거라며. 덕분에 그쪽 사장님과 잘 이야기가 되어서 소정의 이용료를 내는 조건으로 당분간은 연습실을 함께 써도 좋다는 승낙을 받았다. 지금 둘이 나란히 맥도날드에 앉아 햄버거를 먹고 있는 건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진영에게 밥을 사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더 비싸고 좋은 음식도 많은데 진영이는 햄버거면 족하다고 했다. 나는 그런 진영이가 고맙고도 미안했다.

 "아무튼 잘 해결됐다니 다행이고, 밥도 먹었으니 그만 연습하러 가요."

 진짜 독한 사람은 따로 있다니까. 나는 궁시렁거리며 얼음만 남은 음료컵과 포장지를 휴지통에 버리고 진영의 뒤를 따라나섰다. 진영의 회사 연습실은 여기서 5분 거리였다. 맥도날드 앞에서 간판이 훤히 보일 만큼 가까웠다. 진영이와 사거리 앞 횡단보도에 서서 오늘 무슨 연습을 할지에 대해 신나게 이야길 나누고 있는데, 데자뷰처럼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왠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누구에게서 온 연락인지.

 "미안. 나 맥도날드에 지갑을 두고 왔나봐. 얼른 다녀올 테니까 먼저 가 있을래?"
 "에? 지갑을? 다시 한 번 찾아봐요."
 "아냐. 두고 온 게 맞는 것 같아. 먼저 가 있어. 알았지?"
 "형!"

 신호등의 불빛이 바뀌는 것을 보고, 나는 황급히 손을 흔들며 걸어온 반대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곤 터질 듯한 심장을 내리누르며 불이 깜박이는 휴대폰을 꺼냈다. 예상했던 대로 형에게서 톡이 날아와 있었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메세지는 터무니 없이 짧았다.

 - 이번 주말에도 볼 수 있는 거지?

 지금 이 순간 메세지 앞에 숫자 1이 없어지는 걸 형은 지켜보고 있을까. 어떤 맘일까. 나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까. 그럼요. 짧게 세 글자를 적어 보낸 뒤 습관처럼 손톱을 입에 물었다. 전송하자마자 숫자 1이 사라지는 게 보였다. 이런 기분이었구나. 답이 날아오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음 메세지가 떴다.

 - 뭐 먹고 싶은 건 없어?

 형이 만든 파스타만 아니면 다 괜찮아요. 웃는 이모티콘을 붙여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간신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웃고 있을 형의 얼굴이 떠올라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바보같아. 고작 이딴 거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이럴 거면 왜 그렇게 울적해 했던 걸까. 이렇게나 쉬운데. 좋아하는 마음은 계약서와 달라서 잘게 찢긴 후에도 없어지지 않는데.

 - 더 잘해주고 싶었는데 미안하네.

 그래봐야 보이지도 않는데 나는 도리질을 치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너무나 어려웠다. 당장 생각나는 것들을 적기에도 메세지 입력창은 터무니없이 작았다.

 미안해하지 마요. 손끝에서 날아간 말들이 촉촉해진 눈동자에 스민다.





1.

이번 편은 맥윙을 떠올리며 써봤습니다

만약 3편이 보이지 않고 2편 뒤에 바로 4편이 보인다면 비로그인 상태라서 그렇습니다!

로긴하시고 성인 인증하시면 (아마도?) 3편이 보일 거예요.

(근데 별 내용은 없어서 안 읽으셔도 내용 이해에 큰 무리는 없을 듯...)


2.

by 도토링(@miyamist)
by 도토링(@miyamist)


도토링 님께서 이렇게 쩌는 팬아트를ㅠㅠ 그려주셨어요ㅠㅠ 우왕ㅠㅠ

2편에 나오는 녤윙인 것 같네요ㅎ 센스있게 푸린으롴ㅋㅋㅋ 아아 정말 감사해요(__)


3.

저는 피켓팅에 실패해서 내일 할 일이 없으므로 다음 편이나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콘서트 못 가시는 분들 넘 슬퍼 마시고 오셔서 글 많이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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