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 하기엔 아직 바람이 매섭던 어느 날이었다.


 그 무렵엔 이상할 정도로 추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고향에서 가깝게 지내던 형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그 중 하나였다. 성운이 형은 내가 코흘리개 시절부터 옆집에 살며 나를 친동생처럼 아껴주던 형이었다. 성운이 형의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서울에서 작게 사업을 하고 계셨다. 사인은 알 수 없었지만 평소 지병 같은 것도 없었다 하니 과로로 인한 돌연사가 아니었을까 추측할 따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찌감치 상경해 혼자 살던 내게도 부고가 날아들었다. 검은 옷을 챙겨 입고 한걸음에 달려간 빈소엔 조문객이 너무 많아 여기가 정말 장례식장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끌벅적했다. 때이른 비극에 소식을 들은 고향 사람들은 차까지 대절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모양이었다. 성운이 형의 회사 동료들과, 돌아가신 아버지의 거래처 사람들과, 어머니가 다니시는 성당 교우들 틈에 둘러싸여 나는 어딘가 위축된 채로 건더기가 드문드문 있는 육개장을 떠먹으며 눈치를 보았다.


 그만 가봐야겠다 생각하고 일어나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아는 얼굴들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고등학교 친구들이었다. 성운이 형의 동생은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급생이었다. 한 번도 같은 반이었던 적이 없어서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울려 놀던 녀석들이 거기서 거기라 겹치는 친구들이 많았다. 이런 데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마주친 건 그 때문이었다. 예정에 없던 만남이 반가워 우리는 대뜸 소주부터 깠다. 그리곤 여기가 장례식장이라는 것도 잊고 신이 나서 옛이야기를 풀며 술잔을 기울였다. 따가운 눈총을 받다가 한 시간 뒤에 빈소에서 나왔을 땐 이미 모두 만취 상태였다.


 독한 소주 냄새를 풍기며 2차로 찾은 곳은 병원 근처에 있는 연탄구이 고깃집이었다. 분명 들어갈 땐 술을 좀 깨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 빼고 모두 인사불성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정신이 약간은 남아 있는 친구와 둘이서 서울 사는 애들은 택시를 태워 집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모텔로 업어다 옮겼다. 그 중엔 차를 끌고 온 정신나간 놈도 하나 껴 있었다.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 대리를 불러서 집에 보내기로 했다. 차가 없어서 한 번도 대리를 불러본 적이 없다는 내 말에, 친구는 연락처를 뒤져 열한 자리 번호 하나를 넘기고 장렬히 전사했다. 술냄새가 진동하는 모텔방 한 구석에서 전화를 걸어 대리기사를 요청한 뒤 모텔 밖으로 나왔다. 차갑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자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상대적으로 멀쩡하다 할 뿐이지 나 역시 주량을 넘길 만큼 마신 탓에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살아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모텔 앞 편의점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아이스크림으로 해장하는 건 스스로 터득해 갖게 된 습관이었다. 추운 날씨에 코트도 없이 굶은 것처럼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으니 알바생이 신기한 듯이 자꾸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눈치가 보여 이가 시린 것도 꾹 참고 남은 아이스크림을 한 입에 넣고선 편의점에서 나왔다. 그러자 타이밍 좋게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 아까 전화로 대리기사 요청하신 분이죠? 근처에 왔는데 어디에 계신지 몰라서요.


 그러니까 여기가 어디냐면.... 위치를 알려주려는데 아이스크림 때문에 입 안이 얼어 자꾸 발음이 뭉개졌다. 수화기 너머의 남자는 몇 번이나 '네?'하고 되물으며 당황한 티를 감추지 못했다. 대리기사라고 해서 나이 지긋한 아저씨를 상상했는데 의외로 아주 앳된 목소리였다. 요즘은 젊은 애들도 아르바이트로 대리기사 일을 하나. 신선한 충격에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어정쩡한 말투로 대화를 이어가다 전화를 끊었다. 편의점 창유리 너머로 휴대폰을 귀에 대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편의점 밖으로 뛰어나가자 남자는 공손하게 두 팔을 몸에 붙이고 꾸벅 인사를 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앞에 선 소년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뭐야. 그냥 애새끼잖아? 차마 머릿속에 뱅뱅 맴도는 말을 내뱉지 못하고 나는 어정쩡하게 표정을 구겼다. 얼굴로 보나 체격으로 보나 이제 겨우 고등학생 정도 되었을까 싶은 외모였다.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자 편의점 불빛 아래 소년의 얼굴이 환하게 드러났다. 자연스럽게 흩어진 갈색머리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놀랍도록 예쁘장했다.


 "그쪽이... 그... 대리기사 맞아요?"
 "네. 근데 차는 어디에 있어요?"


 소년은 너무나 태연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는 걸어온 방향을 가리키며 엉겁결에 저쪽에요, 하고 답했다.


 "저쪽 어디요?"
 "자세한 건 잘 모르겠는데. 내 차가 아니라 친구 차라서. 키가 어딨더라...."


 덜 떨어진 표정으로 주머니를 더듬거리자 소년의 시선이 내 몸으로 옮겨 붙었다.


 "친구분은 어디 계신데요?"
 "저 위에요."


 나는 머리 위로 손을 올려 모텔 간판을 가리켰다. 소년은 입을 헤벌리고 형광색으로 빛나는 네온사인을 멀뚱히 쳐다보더니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올라갈까요?"


 너무나 이상한 상황에 따져묻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소년은 모텔 입구로 걸어들어갔다. 멍청하게 서 있다 뒤를 따르자 카운터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손짓으로 나를 불러세웠다. 계산을 하라는 거였다. 산 넘어 산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가진 돈을 긁어 모아 방값을 내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소년은 복도 끝에 있는 방 앞에 서서 문고리를 돌리고 있었다.


 "저기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방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소년의 어깨를 잡고 다급히 돌려세웠다. 초롱초롱한 소년의 눈망울이 내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고요한 반짝임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왜요? 제가 맘에 안 드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대리기사라고 하지 않았어요?"
 "네. 근데 차가 없으시다면서요."
 "차가 없다곤 안 했는데. 친구 차라고 했지."
 "그러니까요. 그래서 여기로 온 건데. 싫으면 그냥 차 있는 데로 갈까요?"


 분명히 들려오는 건 한국말인데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버퍼링이 걸린 것처럼 버벅대며 한참을 더 물은 끝에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연락한 곳은 진짜 대리기사 업체가 아니라 성매매를 알선하는 보도방이었다. 대리기사를 요청한다는 말은 관계를 가질 소년을 원한다는 뜻이었다. 굳이 '대리기사'라는 표현을 쓰는 건 주로 차에서 관계를 갖기 때문이라 했다. 그쪽 업계에서만 통용되는 일종의 은어인 셈이었다. 도대체 친구가 어떤 경로로 남자를 공급하는 보도방의 연락처를 저장해두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테리였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거대한 오해 앞에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맨손만 비비적댔다. 둘 다 민망해 죽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럼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콜 받아서 나갔다가 빠꾸당하면 저희가 메꿔야 해요. 두 배로요."
 "두 배?"
 "일종의 벌금이라서요. 가끔 손님을 가려 받는 친구들이 있어서 방지책으로 사장님이 그렇게 정하셨어요."


 벌금이 얼마냐고 묻자 소년은 말없이 손가락 몇 개를 접어보였다. 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절반이라도 보태줄까 싶었는데 아무리 술에 취한 상태라 해도 측은지심에 쉽게 긁을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나는 벌개진 얼굴로 힐끗 소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옆얼굴이 몹시 피로해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방에 들어온 지 30분이 지났는데 우리는 아직도 스무고개 중이었다. 차라리 들어오자마자 했으면 벌써 끝나고도 남았겠네. 위험한 상상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갔다. 몇 살일까. 만난 지 30분만에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일을 해요?"


 기분 나빠할 줄 알았는데 소년은 의외로 피식 웃고 말았다. 별로 웃을 만한 질문은 아니었는데. 이유를 묻자 소년은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뻔해서요. 안 그렇게 봤는데."
 "그런 질문 자주 받아요?"
 "그렇죠. 사실 제 대답도 뻔해요. 옷 사고 신발 사고 그러려고 하는 거죠."


 걸친 옷을 봐서는 도무지 모르겠는데. 나는 나오려던 말을 집어 삼키고 소년의 옷차림을 위아래로 슬쩍 훑어보았다. 몸에 비해 헐렁한 티셔츠. 키에 맞게 접어 올린 청바지 밑단. 현관 앞에 시옷 자로 놓인 서로 다른 색깔의 신발끈이 묶인 운동화. 심각한 불협화음이었다. 우습게도 나는 소년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예쁜 것과 어울리는 것을 잘 구별하지 못하고 헷갈려 하는 게 어린애답고 순수해 보였다고나 할까. 소년의 취향과 달리 나는 뻔한 걸 꽤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사고 싶은 옷은 많이 샀어요?"
 "아뇨. 번 것보다 벌금으로 나간 게 더 많아서요. 오늘만 해도 이게 벌써 세 번째 허탕이라. 제가 그렇게 별로인가요?"


 나는 도리질을 하며 소년의 밤갈색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처음으로 소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와, 진짜 예쁘다. 머리로만 생각한다는 게 정신이 나가서 다 들리게 말해버렸다. 감사합니다. 소년은 부끄러운 듯이 시선을 내리깔며 웃었다. 그리곤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자 소년의 반짝거리는 두 눈이 잡힐 듯이 크게 다가왔다.


 "....빨개."
 "응?"
 "입술이 되게 빨개서요. 죠스바 먹었어요? 달콤한 냄새도 나는 것 같구...."


 죠스바가 아니라 보석바란다. 소년의 입술을 베어물으며 나는 말 대신 몸으로 답했다. 소년의 혀는 촉촉하고 부드러워 아이스크림보다 더 달콤했다. 혀 끝으로 입 안을 간질이다 혀를 깊이 넣자 어설프게 맞춰오는 움직임이 귀여웠다. 그냥 여자랑 하는 거랑 똑같네. 그게 내 머릿속에 남은 마지막 생각이었다. 퓨즈가 나간 것처럼 어느 순간 머릿속이 깜깜해지더니 통제를 잃고 본능대로 몸이 움직였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손은 셔츠의 단추를 풀면서 자연스레 소년의 몸을 어루만졌다. 뜨거운 손바닥에 소년의 매끄러운 살결이 감겨왔다. 뼈도 단단하고 속살도 까맣고 분명히 몸은 남자아이인데 이상하게 피가 뜨거워지며 몸이 달았다. 풋풋한 살결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몸을 포개자 짧고 나직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아직은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듯 소년의 몸은 솔직하게 반응했다. 잔뜩 흥분한 내겐 그것마저도 자극적이었다. 저급한 우월감이란 걸 알지만 마치 누군가의 처음을 갖는 느낌이었다.


 끝난 뒤에도 껴안은 채로 숨을 고르다 그만 가봐야 한다는 소년의 말에 겨우 몸을 떨어뜨렸다. 욕실에 들어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있으니 천천히 제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뭐에 홀린 듯이 해버리긴 했는데 이제부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돈은 어떻게 지불해야 하지. 술값에 방값까지 계산하느라 텅텅 비어버린 지갑 사정이 뒤늦게 떠올라 막막하기만 했다. 허리에 타월을 감고 물기 묻은 머리를 털며 욕실 밖으로 나오자, 소년은 이미 옷을 다 갖춰입고 침대 옆을 서성이고 있었다. 돌아갈 시간을 넘겼는지 아니면 돈 얘기가 남아서인지 초조한 기색이었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 솔직하게 사정을 털어놓았다. 현금이 하나도 없단 얘기에 소년은 잠시 당황하는 듯 하더니 침착하게 계좌번호를 적어주었다. 나는 얼이 빠진 채로 소년이 보내준 계좌번호를 훑어보았다. 예금주 박지훈. 이름이 박지훈인가. 묻고 싶었지만 왠지 용기가 나질 않았다.


 "저기...."
 "네?"
 "미성년자는 아니지?"


 작별인사로 적절한 말은 아니었지만 쭉 찝찝하게 마음 속에 남아 있던 터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년은 피식 웃더니 운동화 뒤축에 손가락을 넣으며 말했다.


 "신고 안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럼 진짜 고등학생이었단 말인가. 어마무시한 짓을 저질러버렸다는 생각에 갑자기 소름이 훅 끼쳤다. 소년은 바닥에 대고 발끝을 톡톡 두드려 운동화를 발에 맞추고 문고리를 잡았다.


 "집에 갈 차비는 있는 거야?"


 아무 말이라도 해서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되는대로 나온 말이었다. 지갑에 한 푼도 없다고 일 분 전에 말해놓고서 그런 걸 물어봐야 아무 의미 없다는 건 내가 더 잘 알았다. 지훈은 비스듬히 선 채로 눈을 깜박거리더니 얼굴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형 이름이 뭐예요?"
 "다니엘."
 "닉네임 말고요. 진짜 이름."
 "본명이 다니엘이야. 강다니엘."


 강다니엘. 지훈은 소리내서 내 이름을 작게 중얼거리더니 다시 몸을 돌려 문고리를 잡았다. 나는 진짜 이게 마지막라는 마음으로 한 번 더 아무말력을 가동시켰다.


 "우리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연락하세요."
 "그.... 이런 식으로 만나는 거 말고 같이 밥 한 끼 하고 싶은데."
 "연락하세요."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감정없이 반복하고서 지훈은 은근한 눈웃음을 지으며 문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지훈이 떠난 뒤에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위이이잉- 정신차리라는 듯이 길게 휴대폰 진동음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로 메세지가 한 통 도착해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보니 번호 끝 네 자리가 어쩐지 눈에 익었다. 편의점에 있을 때 전화가 걸려온 바로 그 번호였다.


 - 입금은 24시간 안에 부탁해요 다니엘 형.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기분에 혼란스럽기만 했다. 스물둘에 처음 겪은 빈소의 공기처럼, 지훈은 그렇게 낯설고도 생생한 느낌으로 나를 흠뻑 취하게 만들고 훌쩍 떠나버렸다.








포스타입 첫글이네요 ㅎㅎㅎ
비로그인 상태에선 성인글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첫편부터 안 보이게 만들수는 없어서(..) 수위 조절해서 전체공개로 올립니다.
아직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서 뭐 하나 쉽지가 않네요. 열심히 연구해봐야겠어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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